쿠리사막 사람들

쿠리 사막 가는 길

쿠리 Kuri는 자이살메르 Jaisalmer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사막 마을이다. 조용한 동네에서 사막의 별을 보고 싶어서 찾아 갔다. 자이살메르에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배차간격이 길 뿐더러 버스는 만원이었다.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아서 버스 안 뿐만 아니라 버스 위에도 사람들이 탈 정도였다. 버스 안은 무척 혼잡했으나 최소한의 질서는 유지되었다. 좌석은 만원이었으나 노인, 여자, 외국인 순서로 양보해 주었다. 나도 좌석 끄트머리에 앉을 수 있었으나 나보다 늦게 탄 여자에게 양보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인도 전역에서 영어가 통하지만, 작은 마을인 쿠리까지 미치지는 않는 모양. 그래도 사람들은 친절했다. 영어를 못 하면서도 어떻게든 인사를 하고 친근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나의 목적지인 쿠리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쿠리, 쿠리!"라며 내리라고 말해주었다. 
▲ 쿠리로 가는 만원 버스. 버스가격은 저렴한데(40루피), 인도에서 저렴한 교통수단은 무조건 만원이다.

▲ 지붕 위에까지 탑승하는 승객들



아르준 가족 게스트하우스 Arjun Family Guesthouse

쿠리 숙소를 미리 예약 할 수 없었다. 인터넷에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할 필요가 없었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이미 호객행위를 위해 버스정류장에 나와 있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장동건이라 했고, 나를 원빈이라고 불렀다. 5분 정도 걷자 아르준 가족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아르준은 '장동건'의 형이었는데 머리가 반백이었다. 아르준은 나를 반겨 주었고 그의 가족들을 소개해 주었다. 아르준의 큰 아들 수레쓰는 17살, 둘째 아들은 14살이었다. 장동건은 한국어를 조금 알았다. 그는 자기를 가리키며 "감자", 아르준을 가리키며 "고구마", 수레쓰는 "염소", 둘째는 "치킨"이라고 가족 소개를 했다.

아늑하고 단촐한 집이었다. 30~40평 남짓의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 그 건물의 가운데는 마당을 만들어 놓았고 건물 뒤편에는 원형 건물에 밀짚으로 지붕을 한 초가집 형태의 부엌이 있었다. 낮에는 마당에 의자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밤에는 옥상에 올라 별을 볼 수 있었다. 별은 물론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잘 보이지만 사파리에서가 훨씬 낫다.

아르준의 아들들, 그러니까 염소와 치킨은 스스럼 없이 내 방에 노크하고 들어온다. 들어와서는 내 휴대폰을 달라 한다. 자동차 게임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자기들도 물론 휴대폰이 있지만 구식 폰이어서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게임을 하나 다운받아 건네준다. 염소와 치킨은 학교에서 돌아와 자기 직전 까지, 그리고 아침먹고 학교가기 직전까지 내 방에 와서 게임을 하고 갔다. 영락없는 남자아이들이다.

아르준은 아주 저렴하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단돈 200루피(약 3,500원)에 숙박은 물론 아침, 저녁까지 포함 주었다. 그러나 싼 만큼 숙소나 식사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손님을 위한 방은 4평 남짓, 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아무데서나 잘 묵는 편이지만 낡은 침대에 더러운 이불, 수질이 의심스러운 씻는 물 때문에 오래 묵을 데는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왠만한 음식은 잘 먹는 편이지만 식사가 맛이 없어서 배가 고픈데도 남길 정도였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는 것 보다는 사파리에 바로 나서는 것을 추천한다.  
▲ 옥상에서 내려다 본 마당. 왼쪽 빨간 상의를 입은 사람이 아르준. 오른쪽이 '장동건', 가운데가 둘째 아들.
▲ 뒷마당의 부엌. 초가집 모양의 부엌으로 들어가면 조리시설이 있다.
▲ 게스트하우스 객실 내부.
▲ 아르준 가족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보는 일몰.


사막의 아들

쿠리로 온 첫 날 저녁 사막을 즐기기 위해 모래언덕 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동네에서 가까워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모래언덕에 거의 가까이 다가가자 낙타를 탄 소년이 다가와 말을 건다.
"어시오시오"
"어서오시라니?"
"어디서 오셨수?"
"남한에서"
"언덕에 올라가려오?"
"응, 그렇네만"
"그렇다면 낙타를 타셔야지. 이방인은 낙타를 타지 않고는 저 언덕에 오를 수 없어요"
"난 그냥 걸어갈 건데. 그리고 저기 보이는 저 사람들도 걸어 올라가잖아"
"이해를 못 하시는군. 저기 사원 보이시오? 사원이 있기 때문에 이방인은 걸어서 못 올라가요. 가려면 낙타를 타야 하는 거요. 저기 보이는 사람들은 내 친구들이고요.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만이 걸어 올라갈 수 있소"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라며 그냥 가려는데 도무지 그냥 보내지 않을 기세다.

그래서 묻는다.
"얼만데?"
"200루피밖에 하지 않아요"
"100 줄게"
"150은 줘야 먹고 살지. 나와 낙타를 좀 생각해 주시지요"
"그래 150으로 하자"
낙타는 일어설 때 살짝 기우뚱했기 때문에

소년은 열세살이었다. 사막에서는 열두살이 되면 직업전선에 뛰어든다. 이 소년도 낙타를 몰며 관광객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한 지가 벌써 1년이 된 것. 열두살이면 초등학교 6학년 혹은 중학교 1학년 정도로 한국에서는 어린 애 취급을 받을텐데, 사막에서는 성인으로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낙타도 이름이 있었다. 내가 올라 탄 낙타의 이름은 '타이거'였다. 낙타 타기는 편하지 않다. 엉덩이가 배기고 허벅지에 무리가 간다. 그런데도 이 소년은 내 뒤에 앉아서 더 빨리 갈 수 있다며 낙타를 재촉한다. 타이거가 뛰어가며 껑껑 소리를 낸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내 엉덩이도 아프다. 천천히 걷는 낙타 위에서 느긋하게 일몰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이 철없는 소년과는 영 마음이 맞질 않는다. 

이내 내렸다. 내려서 셈을 치르자 소년은 고맙다 인사하고 가 버린다. 나는 모래언덕 위에 낙타를 타지 않고 두 발로 서 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는다. 내가 낙타에서 내리자마자 다른 사람이 낙타를 타고 다가와 낙타를 타겠느냐고 묻는다. 방금 타다 내렸다고 말했는데도 10번쯤 끈질기게 묻는다. 짜증나는 날이다. 일몰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서 봤다.
▲ 모래언덕. 쿠리 마을에서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작은 건물이 바로 신전. 그 신전을 핑계로 이방인은 두 발로 모래언덕에 오를 수 없으며 반드시 낙타를 타고 가야만 한다는 강압이 횡행한다. 낙타를 타면 물론 돈을 내야 한다.
▲ 얌전히 앉아 있는 '타이거'. 낙타는 온순한 동물이다. 단지 더러울 뿐.


사막 사파리 Desert Safari 

아르준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을 했다. 손님은 나 혼자다. 아르준은 오후에 다른 손님이 오면 사파리를 같이 할 수 있는데, 혼자여도 자기 아들과 사파리를 갈 수 있단다. 혼자 가면 여럿이 갈 때보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100루피정도 더 들 뿐이다. 아르준은 싸게 불렀다. 하루에 700루피(약 11,000원)란다. 자이살메르에서 출발하면 하루에 1,200에서 1,800루피 정도였다. 나는 혼자라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후에 일본인 1명이 왔고 둘이 손님으로서 사파리를 가게 됐다.  

사피리의 게스트는 2명, 호스트는 3명이었다. 게스트는 나(35세)와 일본 사람(24세), 호스트는 아르준의 조카인 하랏(20세), 역시 조카인 지투(18세), 그리고 그의 첫째 아들인 수레쓰(17세)였다. 한국에서라면 애들이 어른 데리고 관광시켜주는 꼴이겠으나, 사막에서는 열두살부터 일을 시작하니 믿을만 하다. 수레쓰도 사막 일을 한지 5년 되었고, 하랏은 벌써 8년차 베테랑이다. 

수레쓰와 지투는 학생이라 학교를 다닌다.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시간, 오후 4시에 사파리는 출발한다. 1박을 했는데 야영지는 멀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낙타로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를 가면 나온다. 어제 갔던 모래언덕 근처다. 게스트하우스 마다 야영지가 있는 모양이다. 야영지에 아르준 가족의 표식이 있다. 

호스트는 저녁 준비를 한다. 준비과정은 거의 군대식이다. 막내인 수레쓰가 자파티 반죽을 하면 지투가 방망이로 반죽을 펴고 하랏이 굽는 식이다. 반죽은 단순하고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인 반면에 굽는 일은 겉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요령이 필요 한 일. 야채 볶는 것도 마찬가지. 수레쓰와 지투가 야채를 준비하고 썰면 하랏이 요리한다. 이들은 요리를 잘 했다. 집에 있을 때는 어머니와 누이가 하는데, 밖에 나오면 남자들이 한단다. 

저녁식사는 훌륭했다. 자파티와 밥, 달 dal(카레 비슷한 것, 한식으로 치면 국을 '달'이라고 한다), 감자, 당근 등 야채 볶은 것, 그리고 킹피셔. 사파리 비용이 저렴한만큼 식단에 고기는 없었지만 인도에서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한 것이 손에 꼽을 정도다. 어두운 사막 가운데에 불을 지펴 놓고 남자 다섯이 모여 앉아 먹는 식사. 오랜만에 행복한 기분에 젖는다. 게스트가 다 먹을 때까지 호스트는 기다린다. 그들은 게스트가 다 먹으면 비로소 먹는다. 

저녁을 다 먹고, 그들이 편하게 식사하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달빛은 생각보다 밝다. 사막의 모래언덕, 잡초들이 거의다 식별 될 정도. 달빛이 강해서 아직 별빛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리에 누웠다. 생각만큼 춥지 않다. 사막에서 추운 이유는 온도가 낮기 때문이 아니라 바람이 강하기 때문이란다. 바람막이가 있는 야영지에 두꺼운 이불을 덮으니 춥지 않았다. 새벽 4시쯤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떴을 때 엄청나게 많은 별빛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기분 좋은 사파리. 모로코에서 했던 사파리는 지프차로 하루 종일 이동하고 사막을 즐길 시간은 너무 적어서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쿠리 사파리는 사막이 가까워서 차량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고 규모도 작았기에 더 좋았던 사파리가 아닌가 싶다. 3박을 하면 사막 깊숙이 들어갔다 올 수 있다고 하는데 다음번에는 3박을 해 보고 싶다. 1박이 아쉬웠던 이유는 휴양지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시끄러워서 조용한 사막을 만끽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쿠리에는 몇 년 전부터 인도인 여행자들을 위한 휴양지가 많이 생겼다는데, 1박 야영지는 마을에서 가깝다보니 그들이 즐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호스트들.
▲ 야영지. 붉은 깃발이 아르준 가족의 표식이다. 사막의 추위는 온도 때문이 아니라 바람 때문인데, 바람막이 수풀이 바람을 충분히 막아주어 잘때 춥지 않았다. 
▲ 사막의 밤. 달이 밝다.
▲ 쿠리 마을에 있는 휴양지. 쿠리에는 이런 휴양지들이 많다. 여기서 밤늦게까지 가까운 사막으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야생 낙타 사냥

사막에는 많은 야생 동물들이 있었다. 여우, 새, 사슴. 특히 낙타가 많았다. 사파리를 하던 중 호스트들이 야생 낙타를 잡아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르준 가족이 보유하고 있는 낙타는 20마리 정도가 되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하랏이 낙타들을 모아 야영지 근처로 데려왔다. 때는 짝짓기 철. 기르는 낙타 중 한 마리가 야생낙타 무리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들은 낙타끼리 서로 만나기를 기다렸다가 식사준비를 잠시 미루어 두고 사방에서 야생낙타 떼를 몰기 시작했다. 한참을 몰고 쫓더니 드디어 한 마리를 잡아 와서 야영지에 묶어 두었다. 


▲ 야생 낙타들. 쿠리 사막에서는 야생 낙타 보기가 어렵지 않다.
▲ 야생 낙타는 꼬리를 잡히면 도주를 멈춘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뒷발로 차기 때문에 여행자가 함부로 잡아서는 안 될 일. 낙타 사냥을 재연하는 지투. 
▲ 잡힌 야생낙타는 세상을 잃은 표정이다. 그의 앞 다리는 묶여 있다. 1시간 정도 후 길이 들었다고 생각되었는지 지투는 입에 묶인 줄을 풀어 먹이를 먹을 수 있게 놓아주었다. 

지투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낙타들의 앞 다리를 줄로 묶은 채로 풀어 주었다. 낙타들은 어기적 어기적 걸어서 사막 가운데로 나아갔다. 잡아서 야영지에 매어 둔 낙타도 1시간 정도 후에는 앞다리를 묶어 놓은 채로 풀어준다. 나는 궁금했다. 기르는 낙타를 왜 풀어줄까.
"왜 낙타를 풀어줘?"
"낙타는 밤에 먹이를 먹어. 마음껏 풀을 찾아 먹으라고 풀어주는거야."
"그러면 어떻게 낙타를 찾아?"
"우리는 낙타 발자국을 기억해. 내일 아침 발자국을 따라가 찾는 거지."
나와 일본 친구는 놀랐다. 20마리나 되는 발자국을 모두 기억한다니! 


굿바이, 쿠리

아침식사는 버라따였다. 버라따는 달콤한 부침개 같은 것인데 인도식 아침식사이다. 모래언덕이 아쉬웠으나 작별이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자 아르준은 나와 일본 친구에게 사파리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친절하게 물어본다.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팁은 필수. 아르준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하랏과 수레쓰, 지투에게 팁을 주었다.   

자살메르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또 만원버스를 타야한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택시 한 대가 와서 타란다. 비용은 버스와 같단다. 정말? 나와 일본 친구는 반신반의하며 탄다. 택시는 중간중간에 사람들을 태워서 자리가 꽉 찬다. 그래도 버스보다 훨씬 편하다. 그러나 택시는 도착하자 말을 바꾼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자이살메르 시내. 택시 기사는 터미널까지가 20루피이고 시내까지 왔으니 200루는 받아야겠단다. 터미널에서 시내까지 3분도 안 걸리는데 분명 개수작이다. 한참 실랑이 끝에 100루피를 주고 내린다. 그래도 편히 왔으니 됐다. 

안녕, 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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